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파엘 베니테스 (문단 편집) === [[리버풀 FC]] === || [[파일:external/www.101greatgoals.com/stevieben.jpg|width=100%]] || || '''{{{#ffffff 이스탄불의 기적을 일으킨 당시 주장 스티븐 제라드와 함께 빅 이어를 들고있는 베니테스}}}''' || 2004년 [[리버풀 FC]] 감독으로 부임한 후 첫 해에 리버풀 팬들에게는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이스탄불의 기적]]'''을 일궈내며 팀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바로 다음 시즌엔 FA 컵 우승컵을 들었다. 그러나 이후 리그 우승을 달성하지 못하고 매년 우승 권 언저리에만 안착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질힉 듀오의 병크[* 이적자금을 주지 않아 스쿼드를 정리한 자금으로 선수들을 영입해야 했으며, 그로인해 주전과, 서브의 갭이 매우 심해졌고 이는 빅4 상대전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으면서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 게다가 2007-08시즌 알론소가 부진하자 가레스배리를 영입하려 했지만 이적자금이 없었던 탓에, 미들뎁스가 두텁지 않았음에도 어쩔수없이 알론소를 매물로 내놓게 된다, 결국 배리 영입은 실패하고 알론소도 잃으며 리버풀은 암흑기로 들어선다. 심지어 질힉은 구단 운영비용을 구단과 안필드를 담보로 대출하여 충당했다는것이 나중에 밝혀졌다.]와 함께 2009-10 시즌을 '''7위'''로 마감. 리그에서의 성적 부진을 이유로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하였다. 2004년 6월 16일 [[제라르 울리에]]에 이은 리버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부임 후 [[첼시 FC|첼시]] 이적설이 강하게 돌고 있던 캡틴 [[스티븐 제라드]]를 설득하여 잔류해내는데 성공했으나 주포인 [[마이클 오언|오언]]이 계약 연장을 거절하고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다. 첫 이적시장에서 [[루이스 가르시아]]와 [[사비 알론소]] 등 [[라리가]] 선수들을 영입했다. 유틸리티 수비수였던 [[제이미 캐러거]]를 센터백으로 정착시켜 [[사미 히피아]]와 센터백 파트너를 이루도록 했다. 첫 시즌인 2004-05 시즌 부상 선수가 속출하면서 리그 우승 레이스에 합류해보지도 못했고 이웃팀 [[에버튼 FC]]에도 밀려 5위에 그쳤다. 리그컵(칼링컵)에서 결승에 올라 첫 우승에 도전했으나 첼시와의 결승전에서 연장전 끝에 3:2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FA컵에서는 2부리그 팀 번리에 3라운드에서 광탈하는 수모를 겪는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달랐다. 예선을 거쳐 조별리그에서 탈락 위기에 몰려있다가 [[올림피아코스 FC]]를 상대로 후반 42분 주장 제라드의 천금같은 중거리 골에 힘입어[* 5차전까지 2위 올림피아코스에 승점 3점이 부족했던 리버풀은 올림피아코스 원정에서 1:0으로 패했기 때문에 16강을 위해서는 1:0으로 이겨 골득실 차로 2위가 되거나 2골 차 이상으로 이겨 상대 골득실에서 앞서 2위가 되어야 했다.] 극적으로 토너먼트에 진출했으며 16강부터 [[바이어 레버쿠젠]], [[유벤투스 FC]]를 꺾고 준결승에 오른다. 준결승 상대는 압도적인 전력으로 EPL과 칼링컵을 우승해놓은 첼시였는데 전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1차전 원정에서 0:0으로 비긴 뒤 2차전 홈에서 가르시아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해 리버풀은 1984-85 시즌 [[헤이젤 참사]] 이후 20년 만에 결승에 진출하여 1983-84 시즌 이후 21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게 됐다. 그러나 [[이스탄불]]에서 열릴 결승전 상대는 당대 유럽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우승후보 0순위 [[AC 밀란]]이었다. 예상대로 결승전에서 리버풀은 밀란에 전반에만 3골을 허용하면서 3:0으로 끌려갔다. 그런데 후반 들어 6분 사이에 연달아 세 골을 넣어 3:3 동점을 만드는 기적이 일어났고, 연장전에 이어 승부차기에서 [[예지 두덱]]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에 힘입어 승부차기 스코어 3-2로 21년 만에 리버풀에 챔피언스리그 5번째 빅 이어를 안겼다. 유러피언 컵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로 개칭된 이후 첫 우승이었고, 베니테스는 [[밥 페이슬리]], [[주제 무리뉴]]에 이어 UEFA컵(현 [[UEFA 유로파 리그]])과 [[UEFA 챔피언스리그]]를 연달아 우승한 세 번째 감독이 되었다. 2005-06 시즌 [[페페 레이나]]를 영입해 주전 골키퍼로 기용했고, 블라디미르 스미체르와 이고르 비스찬, 호세미, 안토니오 누녜스와 결별했다. [[피터 크라우치]], 모하메드 시소코를 영입한 뒤 겨울 이적시장에서는 수비수 유망주 [[다니엘 아게르]]와 함께 리버풀 레전드 [[로비 파울러]]를 복귀시켰다. 리버풀은 2005-06 시즌 초반에는 주춤했으나 12월 이후 연승행진을 달리며 리그를 3위로 마감했다. 그리고 FA컵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를 16강과 준결승에서 차례로 꺾었고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 한때 2:0으로 뒤졌고 2:2 동점을 만들었음에도 종료 직전까지 3:2로 끌려가다가 제라드의 극적인 동점골로 3:3으로 연장전 및 승부차기에 돌입하여 레이나 골키퍼의 선방 덕분에 우승했다. 1차 예선부터 출발한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1위로 16강 토너먼트에 갔으나 [[SL 벤피카]]에 밀려 탈락했다. 2006-07 시즌 커뮤니티 실드에서 첼시를 꺾고 기분좋게 시작했으나 원정경기에서의 처참한 모습으로 인해 일찌감치 리그우승 경쟁에서 밀려났다. 그래도 2005-06 시즌처럼 중반기 이후엔 정신을 차리면서 3위로 마감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미드필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겨울이적시장에서 영입되어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중원을 구축하기 시작했던 시즌이다. 그러나 무게감 있는 공격수가 없어 상위권 팀 치곤 부족한 득점력이 우승경쟁을 가로막는 원인이었다. 리그컵과 FA컵에서 아스날을 상대로 잇따라 패배하며 탈락했으나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승승장구했다. 조별리그를 가볍게 1위로 통과한 뒤 16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FC 바르셀로나]]를 [[캄프 누]]에서 열린 1차전에서 2:1로 제압한데 힘입어 원정다득점으로 8강에 진출했고, 8강에서는 PSV 에인트호벤을 가볍게 꺾고 준결승에 올랐는데 이번에도 2년 전에 이어 준결승에서 첼시를 상대하게 됐다. 1차전 원정경기에서 1:0 패배를 당했으나 2차전 홈경기에서 1:0으로 앞서 합계스코어 1:1로 연장전 끝에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승부차기에서 또 레이나의 선방에 힘입어 2년 만에 결승전에 진출했다. 아테네에서 열리는 결승전 상대는 2년 전에 이어 또 [[AC 밀란]]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AC 밀란이 [[필리포 인자기]]의 2골에 힘입어 2년 전의 아픔을 설욕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해당 시즌 질힉 듀오가 새로운 구단주가 되며 리버풀과 베니테스의 미래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2007년 여름이적시장에서 [[페르난도 토레스]]를 영입하며 마침내 [[마이클 오언]] 이후 계속되었던 스트라이커 잔혹사 문제를 해결했다. 토레스와 함께 [[라이언 바벨]], [[요시 베나윤]], [[루카스 레이바]], [[안드리 보로닌]]을 영입했다. 2007-08 시즌 초반 리버풀은 더비 카운티를 6:0으로 꺾고 베니테스 체제에서 처음으로 리그 1위에 올랐다. 그러나 리그에서 무승부가 많아지고 챔피언스리그에서 1무2패로 탈락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챔피언스리그에서 베식타스를 8:0[* 챔피언스리그 최다점수차 승리다.], 포르투를 4:1, 마르세유를 4:0으로 차례로 때려눕히고 조별리그를 조2위로 통과하는데 성공했으나 리그에서는 우승경쟁에서 밀려난 채 4~5위를 맴보는 처지가 되자 구단주와의 불화설 및 경질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야인이던 [[위르겐 클린스만]]과의 접촉 루머가 돌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클린스만은 [[바이에른 뮌헨]] 감독이 되었다.] 베니테스와 보드진과의 불화로 화제거리가 될 정도로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리버풀은 2007-08 시즌 토레스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리그에서는 4위,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준결승 탈락, FA컵에서는 16강에서 2부리그 [[반즐리 FC]]를 상대로 패배를 당하면서 무관에 그쳤다. 2008년 여름이적시장에서 [[아스톤 빌라]]의 미드필더 [[가레스 배리]]의 영입을 시도했으나 무산되었다. 보드진은 토레스와 짝을 이룰 [[로비 킨]]을 토트넘으로부터 영입해둔 상황에서 배리의 영입을 위해서 선수를 팔아야하는 입장을 취했고 베니테스는 [[사비 알론소]]를 이적명단에 올리면서까지 배리의 영입을 시도했으나 배리의 영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알론소는 그대로 리버풀에 잔류하여 맹활약했다. 대신 로비 킨은 베니테스와 질힉의 파워게임 때문에 애꿎게 희생양이 되어 반 년 만에 토트넘으로 돌아갔다. 2008-09 시즌 리버풀은 맨유와 첼시를 상대로 리그에서 더블을 거뒀고 첼시의 86경기 연속 리그 홈 무패를 깨뜨리기도 했다. 리버풀은 1996년 이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선두에 올랐으나 2009년 새해 들어 연이어 무승부를 남발하면서 승점을 드랍했고 맨유는 11연승을 거두면서 무섭게 승점을 쌓으며 선두 자리를 빼앗았다. 2009년 3월 [[레알 마드리드]]를 챔피언스리그에서 4:0으로 꺾은 뒤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맨유와의 리그 맞대결에서도 4:1 대승을 거두었고 베니테스는 5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리버풀은 리그에서의 마지막 11경기에서 10승1무를 기록하였고 리그에서 단 2패만 허용하며 승점 86점을 쌓았고 77득점과 +50의 골득실로 각각 이 부문 1위였지만 우승팀 맨유에 승점 4점이 모자라 2위로 시즌을 마쳤다. 베니테스 체제의 리버풀이 리그에서 거둔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그러나 2009년 여름이적시장에서 지난해 이적명단 등재로 인해 감정이 상해있던 알론소가 3천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남기고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며 리버풀에 크나큰 암운이 드리웠다. 대체자라도 잘 구했으면 다행이었지만 유리몸으로 유명한 [[알베르토 아퀼라니]]를 [[AS 로마]]에서 17m에 영입했는데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며 팀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주전 라이트백 [[알바로 아르벨로아]]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대신 잉글랜드 국가대표 라이트백 [[글렌 존슨]]이 영입되었다. 2009-10 시즌 리버풀은 개막 후 3경기에서 2패를 당하면서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챔스 DNA'가 있다던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무기력한 경기력 끝에 [[ACF 피오렌티나]]와 [[올림피크 리옹]]에 밀려 조3위로 탈락했고, 제라드와 토레스 등 주축 선수들이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리그 성적도 추락했다. 유로파리그에서도 끝내 준결승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탈락하며 무관에 그쳤고 리그는 공수에서 심각한 엇박자에 시달리면서[* 리버풀의 공격력이 어느 정도 있던 전반기에는 수비가 말썽이었고, 리버풀의 수비가 안정화된 후반기에는 공격력이 말썽이었다.] 충격적인 7위로 마감했다. 어쩌면 현대축구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을, EPL에선 비교적 빠르게 깨달은 선구자였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시기 맨유는 [[로이 킨]]이 부진하기 시작한 후[* 사실 로이 킨은 전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였다. 다만 그의 수비력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맨유는 한 동안 전문적인 수미가 필요없었다.] [[마케렐레]]의 첼시에게 우승을 조공해야 했고, 빅4 자리를 넘보며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뉴캐슬이나, 팀의 중요 중원 자원인 [[마이클 캐릭]]을 함부로 팔아버린 토트넘은 리그 중위권으로 몰락했다. 당시 리버풀은 [[사비 알론소]], [[루카스 레이바]], 모하메드 시소코,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에 유스선수인 앤더슨[* 리그 출장도 없고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2부리그로 이적했다.]까지 팀 명단에 올려놓으면서 중원에 집중했고, 상당히 떨어지는 전력[* [[욘 아르네 리세]]부터 [[제이미 캐러거]], [[사미 히피아]], [[게리 네빌]]과 동급으로 취급받는 [[스티브 피넌]]까지의 수비진은 리그 원, 투탑급이었으나 윙 자원이 노쇠화가 진행되던 [[루이스 가르시아(축구인)|루이스 가르시아]], 우주먹튀 [[해리 키웰]] 정도라 제라드를 오른쪽에 기용할 정도로 부실했다. [[요시 베나윤]]을 영입하면서 나아지긴 했으나 당시는 [[라이언 긱스]]가 현역이었고 호날두, 조콜, 로번 등의 세계적인 윙어들이 EPL에 집결해있던 때라 윙자원은 중위권 수준밖에 안되었다.][* 공격진도 만만치않게 부실했는데, [[페르난도 토레스]] 영입 이전까지 리버풀의 공격진은 부상을 달고 살아 별 거 못한 [[지브릴 시세]], 애매한 골 결정력을 보여주던 [[디르크 카윗]]과 [[크레이그 벨라미]], 그나마 활약했지만 A급은 못되었던 [[피터 크라우치]]정도였다. 이런데도 리버풀이 공격력이 약한 팀이라는 평가는 받지 않았으니 중원 장악 작전은 성공한 셈이다.]으로도 EPL과 챔피언스리그에서 대단한 활약을 하는데 성공했다. 여기서 [[페르난도 토레스]]라는 창까지 얻은 베니테스는 리그 준우승까지 하며 잘나갔으나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가레스 배리]]의 영입이 무산된 채로 시소코는 방출, 알론소는 이적, 대체영입 아퀼라니는 부상, 남아 있던 루카스는 부진함으로써[* 루카스가 본격적으로 제몫을 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베니테즈의 마지막 시즌부터다.] 중원이 박살나게 되었고 성적하락으로 인해 베니테스의 해임까지 이르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